인간, 그리고 자연 만물의 존엄성
총 52편으로 되어 있는 장시로, 휘트먼의 최고 걸작인 <나 자신의 노래>는 자연 속에 있는 인간, 동물, 식물을 우주와 동일한 것으로 노래한다. 휘트먼이 예찬하는 ‘나 자신’은 휘트먼 자신까지도 포함하는 인류 그 자체다. 그는 인간이 본래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생명은 영원하고, 본성은 선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신과 같은 그러한 온전한 건강체로서의 인간의 본래 모습을, 아주 낙천적으로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휘트먼은 자기가 곧 우주라고 말함으로써 자아와 우주를 동일시하며, 개인을 일시적으로 살다가 죽는 사실적인 존재가 아닌 영적인 존재로 본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인간을 영원한 우주의 영과 합일된 신비로운 존재,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로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휘트먼은 자연 만상의 어떤 미물이라도 기적같이 신비롭다고 여겨서, 식물·동물은 물론 모든 것을 예찬한다. 그가 생각하는 자연은 풀과 나무와 벌레와 짐승은 물론 인간까지도 포함하는 삼라만상이며, 그들은 모두 상하와 귀천이 없는 평등한 존재들이다. 인간이나 자연 만물 모두가 본질적으로 신성하고 존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을 대하면, 한 포기의 풀에서도 우주의 신비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만물의 평등과 조화
휘트먼은 인간이 모든 관념의 허울을 벗어 버리고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보면, 우리의 환경은 향기로 가득 차고 나의 호흡은 자연의 숨결과 합쳐져 조화의 선율이 울린다고 한다. 휘트먼은 만물의 영원불멸을 믿고,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이나 하찮은 존재의 생활 또한 찬미한다. 그리고 휘트먼이 그리는 풀의 이미지는 자연의 상징으로, 풀을 통해 인간은 물론 만물이 평등함을 노래한다.
휘트먼은 그의 시를 통해, 각기 다른 인간들의 활동이, 결국은 그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본질에서 나온 것인 동시에 하나의 본질 속으로 융합되는 신비로운 것임을 깨닫는다. 그 본질은 바로 시인의 자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인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 본질과 현상과의 관계가 서로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나 자신의 노래 1
나 자신의 노래 2
나 자신의 노래 3
나 자신의 노래 4
나 자신의 노래 5
나 자신의 노래 6
나 자신의 노래 7
나 자신의 노래 8
나 자신의 노래 9
나 자신의 노래 10
나 자신의 노래 11
나 자신의 노래 12
나 자신의 노래 13
나 자신의 노래 14
나 자신의 노래 15
나 자신의 노래 16
나 자신의 노래 17
나 자신의 노래 18
나 자신의 노래 19
나 자신의 노래 20
나 자신의 노래 21
나 자신의 노래 22
나 자신의 노래 23
나 자신의 노래 24
나 자신의 노래 25
나 자신의 노래 26
나 자신의 노래 27
나 자신의 노래 28
나 자신의 노래 29
나 자신의 노래 30
나 자신의 노래 31
나 자신의 노래 32
나 자신의 노래 33
나 자신의 노래 34
나 자신의 노래 35
나 자신의 노래 36
나 자신의 노래 37
나 자신의 노래 38
나 자신의 노래 39
나 자신의 노래 40
나 자신의 노래 41
나 자신의 노래 42
나 자신의 노래 43
나 자신의 노래 44
나 자신의 노래 45
나 자신의 노래 46
나 자신의 노래 47
나 자신의 노래 48
나 자신의 노래 49
나 자신의 노래 50
나 자신의 노래 51
나 자신의 노래 52
옮긴이에 대해?
?저자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1819∼1892)은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월트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휘트먼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 병원, 인쇄소, 신문사 등에서 잡일을 하면서 영국 낭만주의 소설과 시, 고전문학, 성경 등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17세가 되던 1836년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후,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으며, 1842년에는 신문사 <뉴욕 오로라>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해에 그는 에머슨이 뉴욕에서 행한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에머슨이 예언해 준 “미국의 시인”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은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그가 36세 되던 1855년 7월 4일에 첫 시집인 ≪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또한 휘트먼은 1862년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동생 조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군 병원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865년에 출간된 시집 ≪북소리와 1875년에 출간된 ≪전쟁 회고록≫은 이때의 경험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2년에는 그의 인생 초기의 생활, 남북전쟁 당시 간호사로서의 경험, 노년기의 일상생활, 그의 문학관 등을 담은 산문집인 ≪표본적인 나날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판 및 판매 금지를 당한 덕에 오히려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풀잎≫ 제6판과 ≪표본적인 나날들≫의 판매 수입으로, 그는 1884년에 뉴저지 캠던의 미클 가에 2층짜리 건물을 구입해 이 집에서 1892년 3월 26일 죽을 때까지 살았다.
휘트먼의 신념과 비전을 통해 나온 시가 미국 시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는 주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 독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미국 최대의 시인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시집 ≪풀잎≫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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