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소설! 살다 보면 때로는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게 된다. 내가 이 소설을 접하게 된 게 바로 그런 행운 중의 하나였다. 날씨가 아주 좋았던 어느 가을날, 나는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고, 번역에 들어가기 전에 두 번이나 읽었다. 두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는데도 나는 번역을 하면서도 또 킬킬거리며 웃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 만나기 전까지 각자의 사고 방식이나 살아왔던 삶의 방식, 전통 등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과 오해가 봐도 봐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이 절대 합쳐지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도저히 융화할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서로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막상 번역 작업에 들어가니 결코 그렇지만은 않았다. 임신 후반기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소설 번역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결국 약속했던 마감 날짜보다도 훨씬 늦게 번역이 끝났지만, 원고를 넘기고 나서도 자꾸 여기는 이렇게 고치고, 저기는 저렇게 고칠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미 넘긴 원고를 다시 수정해서 넘기기로 약속하고 얼마 후, 나는 예쁜 딸을 낳았다. 젖 먹는 시간만 빼고 내쳐 잠만 자는 갓난아기를 옆에 뉘어 놓고 다시 처음부터 원고를 다시 읽었다. 중간쯤 읽었을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제이미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과 건강하고 활기찬 신체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언젠가는 알렉처럼 강하면서도 자상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어떤 여자 탤런트가 딸을 낳자마자 어떤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야 할까 생각했다기에 참 성급하기도 하다 했는데, 나 역시 별다를 거 없는 조급한 엄마였다. 이 책을 꼭 한 권 보관해 두었다가 내 딸이 크면 읽어 보라고 권해야겠다. 엄마가 처음 번역한 소설이라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는 엄마가 바라는 딸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고, 내 딸이 만났으면 하는 남성상도 들어 있으니까. 약속했던 시간까지 손을 털지 못했는데도 너그럽게 이해해 준 현대문화센타 편집부 직원들과, 내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역자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