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 여행과 함께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한 후 돌아온 즉시 열하일기 집필에 전념하여 이 작품을 완성한다. 이 책에는 시대착오적인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그동안 잘 밝혀 지지 않은 어려운 전고나 고사성어를 모두 찾아 해설함으로써 오역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역자가 직접 연행의 전 코스를 답사하면서 관련된 곳들을 촬영,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상세한 주석을 통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열하일기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했다. 1권에서는 압록강을 건너 북경을 거쳐 열하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 : 박지원
朴趾源, 호 : 연암
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
박지원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불후의 문장가로 조선의 역사에 남은 인물이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벗어나 이덕무,... 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
박지원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불후의 문장가로 조선의 역사에 남은 인물이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벗어나 이덕무, 홍대용, 이서구, 백동수 등과 어울려 수학하였다. 1780년에 삼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열하일기』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69세에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운명을 달리했다.
역 : 김혈조
金血祚
1954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였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이래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공부하고 있다.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연암의 산문 작품을 연구한 『박지원의 산문문학』이라는 저서와, 산문을 가려 뽑아 번역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역서가 있다. 「연암체의 성립과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논문 이외에 연암의 문학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